2025년 6월 9일 월요일

#3 에피소드 1 끝



올려다본 하늘은,

검은 타르처럼 짙게 깔린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태양빛은 완전히 차단됐고,
지상은 마치 밤처럼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타임폴은
접촉한 대상의 시간을 빼앗는다.
그리고 그 비를 내리는 카이랄 구름은
밤과 낮의 감각마저도 지워버린다.

이 감각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이,
그저 어긋나버릴 뿐이다.

방금 전까지
어둠 속을 파고들던 트럭의 전조등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비추고 있었다.

앞을 주시하며 기둥을 붙잡은 채
이고르의 콧속을 찌른 건──
소금기 섞인 냄새였다.

바다는 이곳에서 한참 떨어져 있을 텐데.
그 냄새는 콧속을 타고, 눈물로 바뀌어 떨어졌다.
틀림없는 ‘저편’의 냄새였다.
죽은 자들의 세계, 그 냄새.

그 순간──
모터가 비명을 질렀고,
전조등이 꺼졌다.

비와 어둠뿐인 세상.
동력을 잃은 트럭이,
정지했다.

운전사가 다급히 소리치며
모터를 다시 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진정해.
일시적인 정전일 뿐이야.

리고르는 뒷유리를 통해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타임폴은
전자기파에 영향을 주어
전기 계통을 무력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곧 회복될 것이다.

진정해──
자신에게, 그리고 운전자에게 되뇌었다.

그게 통했는지
운전석 안쪽에 불빛이 돌아왔고,
전조등도 다시 켜졌다.
모터도 곧 살아날 것이다.

조금 안도하며 샘을 바라보자,
그의 시선이 이고르의 왼쪽 어깨로 향해 있었다.

그 어깨에 장착된
오드라덱이라 불리는 감지기의 끝이
손바닥 모양으로 펼쳐졌다.

바닷내음, 오한,
울컥이는 구역질, 어지럼증까지──
모두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들은 근처에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 오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드라덱은
공기를 휘젓듯 불안하게 깜빡이며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 장치는 BB와 연동되어
죽은 자들의 위치를 가리켜주는 인터페이스다.

만약 BB가 그들을 포착하고 있다면,
오드라덱이 방향을 가리킬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의 기운이 짙은데도
전혀 감지하지 못하다니──

“샘, 뭔가 보여?”

“아니, 아무것도 안 보여.”

화를 참는 듯한 어조였다.
샘 역시
죽은 자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이고르는 가슴에 매단 포드를 톡톡 두드렸다.
부탁이야. 우릴 좀 구해줘.
그 괴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갓난아기가 칭얼대듯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오드라덱이 거세게 회전을 시작했다.
부서진 풍차처럼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가기만 한다.

“이 BB, 불량품인 걸지도 몰라.”

누구에게라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던진 말이었다.

그 순간──
모터가 다시 살아났다.
타이어가 땅을 물고, 트럭이 달리기 시작했다.

스며들 듯 번져오는 죽음의 기운에서
단 1초라도 빨리 도망치기 위해
트럭은 속도를 끌어올렸다.

이고르는
몸이 흔들리지 않게
기둥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찌릿하게 진한 악취가
콧속을 뚫고 뇌를 후벼팠다.

그리고──
회전하던 오드라덱이 갑자기 멈췄다.

손바닥 모양이 십자형으로 변하더니
정면을 가리켰다.

……큰일이다.

놈들이──
바로 저 앞에 있다.

트럭은 지금,
죽은 자들의 영역을
정면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방향을 바꾸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차량 전체가 요동쳤고,
운전사의 비명과 브레이크의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운전사의 어깨 너머로,
프런트 유리에 시커먼 손자국이 찰싹 붙어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손의 주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몸이 휙 들려 허공에 떴다.
막무가내로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무언가 소리를 질렀지만, 말이 되지는 않았다.

이고르는 트럭의 짐칸에서 튕겨 나가
땅에 세게 내팽개쳐졌다.

――으윽…

신음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질척이는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본다.

신음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운전사가,
넘어진 트럭 아래 깔려 있었다.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다.

등을 바닥에 뉘인 채
상반신만 간신히 비틀어 팔을 휘저으며 몸부림친다.

타임폴에 맞은 얼굴은,
노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깊게 팬 주름, 새하얘진 머리카락.

하지만 “살려줘…” 하는 그 목소리는
아직 청년의 울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금만 버텨. 구해줄게.

이고르는 트럭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시야 한쪽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샘이었다.
샘이,
떨어진 시신 가방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넘어졌을 때 다친 걸까,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고 있었다.

검게 변색된 시체 가방,
그 얼굴 부분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비틀린 황금빛 가면을 억지로 뒤집어쓴 인간 형상의 관.
배꼽 부근에서는
수많은 미세한 입자가 샘솟고 있었다.
그것들이 실처럼 연결돼,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네크로화의 마지막 단계.
인간이 죽은 자에서 괴물로 변이하기 직전의 상태.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일이──
시체 처리반으로 배속됐을 때 들었던 설명이──
지금, 눈앞에서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다.

――인간은 죽으면,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온다.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한 개념,
생명의 요소를 구성하는 ‘에레멘트’를 응용한 설명이다.

만약 육체가 불완전하게 남아 있다면,
영혼은 그 육체를 찾아 헤매게 된다.

죽은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육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돌아갈 몸이 없다는 걸
영혼에게 알려주기 위해,
죽은 자는 즉시 소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은 좌초된 존재──
Beached Things가 되어
살아 있는 자를 찾아 돌아다닌다.

그게 바로 ‘BT’,
저 놈들의 정체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좌초지대,
스트랜드 존(Stranded Zone)이라 불린다.

지금 이걸 곱씹어서 뭐해…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고르는 운전사를 구하기 위해 그의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넣었다.
어떻게든 끌어내 보려 발버둥친다.

하지만……
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비명을 내지르는 운전사의
고통과 공포를 덜어줄 수조차 없었다.

“말하지 마! 숨도 쉬지 마!”

샘의 목소리에 이고르는
확, 뒤를 돌아봤다.

그래,
그랬지──

이고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운전사도 그대로 따라 했다.

십자 형태로 벌어진 오드라덱이
두 사람의 머리 위를 가리키며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BT를 볼 수 없듯이,
놈들도 우리를 볼 수 없다.

생자의 숨결이나 소리를
단서 삼아,
살아 있는 자를 찾아 헤맨다.

손자국은
놈들이 생자를 찾는 흔적이다.

……설명서 그대로였다.

이고르 바로 옆,
뒤집힌 트럭 문에
검은 손자국이 찍혔다.

그 손자국은
서서히 아래로,
문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BT는──
바로 근처에서
우리를 찾고 있다.

23-24





숨을 멈추고,
소리도 내지 않고,
모든 기척을 죽인다.

지금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예상대로,
손자국은 둘에게서 멀어져갔다.
샘에게 경고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시신 가방이 크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마침내 떨림은 멈추지 않게 된다.

시체 가방을 고정하고 있던 벨트가
철컥, 철컥, 하고 잇따라 끊어진다.

작게 떨리는 가방 아래 땅바닥에서는
끈적한 타르 같은 물질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가방에서는 여전히 미세한 입자들이 방출되고 있다.
샘이 얼굴을 들었다.

“……망했네.
네크로화가 진행됐어.”

그렇게 중얼거린 샘을 눈치챘는지,
손자국이 샘 쪽으로 향한다.

아니, 어쩌면 이제 막 네크로화된 시신──
새로 생겨난 '동료'를 맞으러 간 걸지도 모른다.

입을 틀어막은 채,
이고르는 손자국의 행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샘은 진창에 엉덩이를 붙이고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손자국을 노려보고 있다.

손자국은 마치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샘인가, 시체인가──

……시체 쪽으로 가라.
이고르는 그렇게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닿지 않았다.
손자국은 샘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불완전한 죽음──
네크로화된 시체는,
끝까지 집요하게 생자를 좇는다.

샘은 숨을 죽인 채,
다친 오른쪽 다리를 끌며 뒤로 물러난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만큼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샘은
“어서 도망쳐.”
하는 시선을 이고르에게 보낸다.

손자국은 움직임을 멈추고,
무언가를 갈피 잡지 못한 듯 머뭇거린다.

샘이 만들어준 이 틈──
놓칠 수 없었다.

이고르는 다시 한 번 운전사를 끌어내기 위해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이미──
운전사의 몸은 한계에 이르렀던 것 같다.

그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 소리가 방아쇠가 되었다.

손자국은 다시 방향을 틀어
이고르와 운전사 쪽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정면으로 달려든다.

그뿐이 아니다.
차체 너머,
이고르의 등 뒤에서도
죽은 자들의 기척이 밀려오고 있다.

……포위됐다.

운전사의 비명을 뿌리치고
이고르는 몸을 일으켰다.

조용히 좀 해줘…
그 목소리가, 죽은 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살아 있는 네가
죽은 자의 손자국에 붙잡히면──
죽은 자는 널 끌어안으려 들 거야.

생자와 사자,
물질과 반물질──
만나선 안 되는 것들이 맞닿으면
폭발이 일어난다.

“……살려줘.
살려줘, 제발──”

운전사는 울부짖었다.
그 울음은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 목소리를 향해
죽은 자들이 몰려든다.

이고르는 권총을 꺼내
운전사에게 겨눴다.

죽은 자는, 죽은 자를 탐하지 않는다.
죽은 자끼리는 포옹해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아.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준다.

그건
자신의 손가락이 아닌 것처럼 무거웠다.

이고르가 결심하기
조금 전──

보이지 않는 손이
운전사를 붙잡았다.

꼼짝도 못 하던 그의 몸은
트럭 아래에서 끌려나와
허공에 뜬다.

“…미안해.”

이고르의 방아쇠에서
탄환이 발사됐다.

총알은 운전사의 이마를 꿰뚫었다.
즉사였다.

이제,
죽은 자들은
운전사에게서 흥미를 거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부탁이야……」
라고 전하고 싶어 샘을 본다.

샘의 등 뒤──
전복된 트럭 위에,
사람 그림자가 서 있었다.

이고르가 바라보자,
샘도 뒤를 돌아본다.

후드와 망토를 걸친 그 모습은
어둠 속이라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 그림자는
한 손을 허공에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피 냄새.
웅덩이에서 썩은 물 냄새.
고기와 내장을 썩힌 생선 냄새.

모두 섞여 몰아친다.

극심한 두통과 오한,
속이 뒤집히는 메스꺼움──

동시에,
두터운 구름층을 찢고
포효가 들려온다.

울음소리도, 비명도, 위협도 아니다.
단지 존재 자체를 꺾어버릴 듯한,
불길하고 무력한 소리.

오드라덱이 십자가 형태로 펼쳐지며
허공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가슴의 BB가
경련하듯 몸을 젖히고,
그대로 멈춘다.

……왔다.

발이 미끄러진다.
발밑의 땅이 단단함을 잃고,
흐르기 시작했다.

액체화된 대지──
하지만 진짜 액체가 아니다.

칠흑 같은 팔이
수없이 대지에서 솟구쳐 나와
이고르의 다리를 잡아끌고 있었다.

둘러보면──
이고르 주위의 땅은
이미 타르 바다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의 지형은 흔적조차 없다.

극단적으로 느린 슬로우모션의 바닷면처럼,
여기저기가 부자연스럽게 솟아오르고 꺼져 있었다.

트럭은 그 파도 사이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 위에 서 있던 실루엣은
이미 사라졌다.

강하게 다리가 잡아당겨진다.
왜인지 모든 게 이해되었다.
──발밑이 아닌,
위를 올려다본다.

……끝이다.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한 실루엣이,
하늘 위에 솟아 있다.

그 머리는 구름을 뚫었고,
양손에는 지면과 이어진
수많은 줄을 움켜쥐고 있었다.

지구라는 껍질을 뜯어내고,
내장을 뒤집어내기 위해
그 줄을 당기고 있다──

적어도 이고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저것에게 잡히면
‘대소멸(보이드아웃)’이 발생한다.

매뉴얼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네크로화가 진행된 시체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
그것은 자신의 육체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향한 미련으로 인해,
사자의 세계에서 ‘좌초(스트랜드)’되어 나타난다.

반물질과 같은 성질을 지닌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가 접촉하면
대소멸이 일어난다.

도대체 누가 그런 경험을 하고
이 세계로 되돌아와서
매뉴얼을 썼던 걸까……

그걸 떠올리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며,
이고르는 외쳤다.

“도망쳐──!”

절망을 내뱉는 대신,
샘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

이고르는
가슴의 포드를 떼어
샘에게 던지고,

권총의 총구를
자기 턱에 가져다 댄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 순간──
다리가 잡아채였다.

천지가 뒤집히고,
총알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며
총은 어디론가 떨어진다.

“……도망쳐……”

이제는 명령이 아니라
간절한 호소였다.

제발, 샘.
너만이라도 도망가 줘.

조금이라도 너에게
도망칠 시간을 줄 수 있다면──

이고르는
허리에 찬 나이프를 뽑아
왼쪽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포드의 접속 유닛에 걸려
궤도가 빗나갔다.

한 번 더──

칼끝이 유니폼을 찢고
살을 파고들어
갈비뼈를 긁어낸다.

한 번 더──

흉근이 저항해
심장을 보호하려 한다.

한 번 더──

보이지 않는 손이
이고르를 휘둘러
자살을 막으려 든다.

거꾸로 된 시야 너머,
샘이 보였다.

그 품에는──
BB가 안겨 있었다.

……도망쳐라.
그 아이와 함께 도망쳐 줘.

이고르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칼을 심장에 꽂았다.

……아프지 않았다.
아니, 고통은커녕
감각 자체가 없었다.

의식이,
몸의 소멸 지점으로
급격히 후퇴해간다.

육체와 의식이 분리된다──

‘죽음’이란 스위치가 켜지듯
갑자기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페이즈가 이행되는 과정.

즉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이고르의 ‘혼’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이고르의 육체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한 죽은 자에게
삼켜진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마주쳐,
*대소멸(보이드아웃)*이 일어났다.

거인도,
이고르도
사라졌다.

그들은 엄청난 효율로
에너지로 환원되었고,
그 에너지는 주변을 집어삼키고,
파괴하고,
분해해 나갔다.

센트럴 노트 시티는 사라졌고,
샘 브리짓스와 BB도
대소멸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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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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